나는 무엇인가.



요즘 내가 즐겨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TV방송으로는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인터넷 라디오 방송으로는 "나는 꼼수다"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어찌보면 양 극단에 있는 프로그램으로 볼 수도 있고, 같은 맥락에 있는 프로그램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즐겨보고 있는 나는 또한 양 극단의 맥락을 즐기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것을 이어주는 같은 맥락의 삶을 즐기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학자로서의 삶을 지향하는 나의 모습은 "나는 가수다"의 어떠한 측면을 지향하고 있을 것이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서, 물론 대중들의 비판과 규정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이 그 하나이다. 교육학 전문가로서 일반 대중들이 "막말"하는 모습들을 보며 분노하고 때로는 엘리트주의에 빠지는 나의 모습들은 그러한 내 모습의 한 단면이다. 이러한 전문가로서의 능력을 통해 올바르지 못한 세상에대해 분노하고, 대중들을 설득하여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른 하나이다.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며, 아버지와 토론을하며 싸우기만 하는 나의 모습이 여기에 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전자도, 후자도 나의 능력과 노력의 바운더리에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한때는 평생을 타인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며 성직자를 지향했었다. 인생의 기준은 봉사이며, 타인에게 배푸는 삶이 나의 미래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성직자라는 특수한 삶의 형식이 나에게서 자신감을 빼앗아 갔다. 소위 '소명'이 없다는 것. 성직자는 말 그대로 신이 정해주는 것이며, 내가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무속신앙적 신념이 나를 합리화해준다. 그러고 난 후 나의 지향은 '교사'라는 또다른 성직으로 흘러갔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 꽤나 큰 편인 나(나 스스로의 생각일 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무한한 사랑에도 부족해하는 나이기에, 타인에 대해 봉사하는 삶이라는 맥락과 어울려 교사라는 성직이 나의 천직인 줄 알았다. 남을 가르치려드는 이기적인 본성까지도 나에게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 성직 마져도 쉽게 해낼 수 없다는 나의 마음이 나를 다른 곳으로 회피시켰다. 그렇게 대학원이라는 곳으로 왔고, 아직 그 도상에 앉아 있다.

내가 지향하는 삶은 무엇인가. 나는 가수다의 전문가적 기질인지, 나는 꼼수다의 사회 변혁적 기질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둘 다를 지향하면서도 어느 곳에도 진득하니 삶을 이끌어가는 삶을 살지 못하는 나는 안타까워한다. 비판적 지식으로서의 삶도 도구적 이성이 어느정도의 수준에 올라왔을 때 내가 이루어낼 수 있는 모습이다. 나는 꼼수다에서 들은 것이지만, 자신의 많은 재산을 시민운동을 하면서 다 까먹었다고 하는 박원순 대표의 모습을 내가 따라갈 수 있을까. 홍준표 대표가 비꼬았듯이 마누라에게 얹혀서 살아가는, 남편 구실을 못하는 삶을 통해서 나의 삶을 이끌어갈 수 있을까. 나도 그렇고 상영이도 그럴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중학생, 고등학생 때에 끝냈어야 할 고민들을 이제 3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 자리에서 이렇게 하고 있는 나를 보면, 한심하기도 하고 죄스럽기도 하다. 이러라고 부모님께서 나아주지는 않으셨을텐데....하는 자책도 해본다. 현상학이라는 학문을 하면서도, 나는 가수다의 사람들과 같은 삶 많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 그러면서도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 피디와 같은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나의 모습. 그들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그러한 추진력과 치열함이 부럽고 나를 부끄럽게 한다.

다시 결론은 치열함이다. 치열함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도 석사논문 따위를 완성하지 못하며 어물적어물적 마누라와 교수님, 나와 부모님 모두를 괴롭히고 있는 나의 모습은 치열함을 상실한 나의 모습이기 때문에 스스로 반성하고 힘을 내어야 한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나의 삶에 치열함을 상실한 순간 현상학에도, 사회철학에도, 사회에도, 가족에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사라진 것 같다. 나를 치열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하나의 준비들을 다시 이끌어가고 있는 요즘이다. 몸이 많이 약해졌지만, 이 또한 관리하는 것이 나의 철저한 치열함 속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일 것이다. 결론은 또다시 뻔한 이야기고, 하나마나한 이야기이다.

주말에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나와의 행복한 삶과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는 삶을 살기 바라는 우리 마누라는 박원순 변호사와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가족에 대한 사랑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나는, 사실 나 혼자만의 삶을 추구해야하는 사람이 그러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개인에 대한 사랑이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나를 치열하게 만들고 싶은 나는 바보같고, 현대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사람일까.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디로 가야하는가. 길은 보이는데, 그 길이 바른 길인지 알기가 어렵다.




by Anselmus | 2011/10/16 14:07 | Diary.. | 트랙백 | 덧글(0)

세번째 만남을 위한 기다림.



    도경이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오후에서부터 저녁까지 도경이와의 만남이 약속되어 있다. 벌써 세번째 만남이다. 두번째 만남에서는 즐거움과 아쉬움, 그리고 안타까움이 교차했었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즐거워하던 도경이와의 만남, 조금은 지루하면서도 나에게 지루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아이의 모습. 나에 대한 수많은 배려와 나와 비슷했던 모습 등에서 행복과 안타까움이 교차했었다. 엄마를 사랑하는 모습에서, 아빠에 대한 원망이 있는 모습에서 나와의 공통점이 보였다. 가슴이 짜안 했다.


    "난 돈을 벌고 싶어요. 얼른 돈을 벌어서 엄마 옷을 사주고 싶어요. 우리 엄마는 옷이 별로 없어요."


   이제 아홉살밖에 먹지 않은 아이도 숙녀라고 벌써부터 옷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옷을 사주고, 집안 살림을 하고, 거기에다 직장 일까지 하느라(도경 엄마를 보고 있으면 사실 선후관계는 달라보인다. 직장맘으로서 직장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노력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훌륭한 '엄마'이다.) 본인을 돌아볼 새 없는 엄마에 대한 어른스러운 딸내미의 애착과 효심이다. 나는 저 나이에 저런 생각을 했던가. 대견하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엄마에 대한 효심이 대견하고, 마음고생이 많은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어른스럽다는 연구결과가 가슴아프다. 이제 아홉살. 무엇이 그렇게 도경이를 아프게, 힘들게 했을까.







    아이를 기다리며 오늘의 수업을 준비한다. 과외라는 명칭이 부담스럽다. 벌써 수업료까지 받았다. 받지 말았어야 했는걸까. 아니면 내 역할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시는 거라고 생각해야 할까. 지난번 수업에서 영어 수업을 진행하자 바로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던 도경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힘들더라도 하게 해주어야 할까. 도경이가 나를 좋아하는 것을 이용해서 힘들더라도 가르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아이들은 한국어를 배우기에도 힘이드는데, 아직 언어적 사고력도 형성되기 전인데, 독서수업과 영어수업을 맡고 있는 나는 도경이에게 독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냥 도경이랑 놀아주는 것에 만족해야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이 짧은 시간이 도경이에게 가장 의미있고 소중한 시간이 될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경험이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이요, 성찰의 순간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경험이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이요, 안타까움이다. 성찰의 시간이다.


    우선은 도경이가 좋아할 지 모를 영어 동화를 준비했다. 마녀의 이야기. 아직 한국어 동화도 읽기 힘들어할 정도로 언어적 사고력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나이이고, 또 몸 중심적인 활동이 더 중요한 나이이다. 그래서 이것이 도경이에게 무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힘이 들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무의미할 수도 있고 도경이에게 공부의 흥미를 빼앗을 수도 있다. 생각보다 영향이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기 때문에, 나는 도경이와 나와의 만남이 큰 의미가 있기를 바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만남에 있어 다른 측면 뿐 아니라 학습의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 내가 도경이의 삶이 큰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장편의 에피소드 형식의 동화이다. 총 11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동화인데, 오늘 내가 준비한 것은 1편이다. 다음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함께 배울 것이다. 이 동화는 아이들에게 상상력과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전형적인 동화이다. 서양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고, 언어적인 형식을 배울 수 있는 기본적인 틀과 문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경이가 재미를 느낀다면 별 무리가 없을 것이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더욱 힘이 들 수 있다. 도경이가 이 이야기에서 재미를 느끼고, 다음 시간에 그 다음의 이야기를 기대했으면 한다. 분명 나의 수업 역량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불가능할 수 있는 기대를 한다. 난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시간이 다가온다. 남은 시간은 1시간. 나에게 주어진 숙제는 위에서 정신없이 나열한 고민과, 미처 나열하지 못한 고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이다. 2시간의 수업을 하려면 2시간의 준비가 필요하다던 어떤 선생님의 말씀. 하지만 그것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칠 때의 말이다. 초등학생들의 경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 교육대학에서 상위권 학생들을 초등교육에, 중하위권 학생들을 중고등학교에 임용한다는 프랑스의 교원임용정책이 올바르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는 시간이다. 준비가 필요하다.






by Anselmus | 2011/10/08 14:57 | My Learners | 트랙백 | 덧글(0)

만남.


2011년 8월 21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녀를 만났다. 아름다운 그녀, 도경이... 내가 최근에 만났던 사람들 중 최고의 미모를 자랑한다. 귀엽고, 이쁘고, 장난스럽다.
높은 콧대가 하늘을 찌를 듯하며, 갸름한 턱선이 미인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웃음기와 장난기가 가득한 눈가엔 장난스러움과 부끄러움, 말괄량이스러움의 눈빛이 함께 들어있다. 정말로 앵두같은 입술 속엔 하나 둘 자리를 비워 놓은 자그마한 하얀 이들이 들쑥날쑥 자리를 잡고 있다. 어여쁘고, 어여쁘다.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스럽다.





  첫날이라서 그랬던 걸까. 약간은 수줍은 듯한 미소와 행동들이 참으로 어른스럽다. 그네의 엄마는 아이가 처음이라 부끄러워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나중에 만나면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데, 난 그저 이쁘고 대견하기만 하다. 처음보는 나에게 웃음과 미소를 보내주고 낯가림을 하지 않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언제까지라도 함께 있고 싶은 시간이어다. 주어져 있던 시간이 많지 않아 오랫동안 함께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었다. 


  도경이는 과외가 있어 길을 떠나는 나를 배웅해주러 충무로역까지 따라와 주었다. 고마웠고 행복했다. 안아주고 싶었다.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른들의 사랑을 받아 무럭무럭 자라기 위해 이쁠 수밖에 었었다고 하던 어느 학자의 말에 굴복할 수 밖에 없을 만큼, 도경이는 나의 마음 속으로 폭 들어와 버렸다. 어떠한 마법을 써서 나의 마음을 휘어 감은 듯, 그래서 나의 주체성을 잃고 종속되어 버리는 듯 정신없이 그 아이의 어여쁨에 빠져 있었다.


  도경이와 난 작별인사로 서로를 안아주었다. 내 배위에 얼굴을 맞대고 나를 안아주던 도경이의 입가엔 수줍은 듯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살이 쪄서 수박 만해진 나의 배 위에 아이의 아름다운 미소가 담겨 있었다. 나이가 들면 살이 들어서는 남자의 배가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의 미소를 띄울 수 있는, 아이들의 행복을 담으 수 있는 소중한 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웃고, 놀고, 행복해하는 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럭무럭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자라기를 바란다. 그 것이 내 소망이다.



by Anselmus | 2011/09/28 15:13 | My Learners | 트랙백 | 덧글(0)

창잉과의 두 번째 떨어짐

짧은 이별일지 모르지만, 그 시간은 너무나 갑자기 왔다. 한동안 우울함 속에 놓여 있던 마음. 하지만 성민정 선생님의 논문을 봐준다는 핑계로 그 시간을 우걱우걱 보내왔다. 그러던 중 갑자기 창잉이 떠났다. 이미 두달 전에 예정되어 있었던 이별. 그런데 이 이별이 너무나 갑작스럽고 성급하게 느껴진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 한 상태에서 가버린 창잉의 빈자리가 갑자기 허전하게 느껴진다. 토요일 낮. 이찬주 선생님과 음악을 들으며 앉아 있는 이 자리가 참 허전하게 느껴진다.

 

우리 오빠랑 마지막 뽀뽀도 못하고 헤어졌네.”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챙겨 사거리로 나왔을 때, 신호등은 이미 반을 지나 다음 신호를 기다려야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거리 저쪽에서 공항버스가 오는 것을 봤다. 창잉은 버스가 옴을 나에게 알렸고 놓치지 않으려는 듯 이미 빨간색으로 변해버린 신호등을 무시한 채로 횡단보도를 뛰어 건넜다. 무엇이 그리 급했을까. 공항버스 운전기사 아저씨도 아주 급한 몸동작으로 버스에서 내리더니, 창잉의 큰 여행 가방을 버스 아래 짐칸으로 집어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두 사람은 버스에 올라 사라졌다. 버스가 앞으로 나아갈 때 창잉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던 난 버스 안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었지만, 창잉은 버스요금을 내느라 지갑만 쳐다보고 있었다. 허전함.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너무나 빨리 상황이 지나쳐 가버렸다. 학교를 나서면 갈 곳이 없다는 허전함이 나를 감싼다.

성민정 선생님이 미워진다. 그놈의 박사논문. 박사논문은 원래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쓰는 것이다. 주변에서 도와주거나 조언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렇게 붙들고 한 달을 넘도록 몸 바쳐 도와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수님께서는 나의 마음을 달래주시려는 듯, 원래 이런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듯 성민정 선생님에게 50만원을 주라고 말씀하셨단다. 그 시간이면 난 그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 우리 창잉에게 어제 사주지 못한 베이지 니트를 사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시간이면 내 공부를 훨씬 많이 하여 아직 초록 이후로 손도 대지 못한 나의 논문을 어느 정도 전개해 나갔을 것이다. 아니면 속이라도 시원하게 스터디를 열심히 해서 지식이라도 많이 쌓았을 것이다. 거의 한달 반에 해당하는 시간. 개인적 능력의 부족 때문이겠지만, 그 시간의 낭비와 정신없음이 성민정 선생님을 너무나 밉게 한다. 창잉의 출국이 너무나 갑작스럽고 미안하게 느껴지는 것도 다 그 때문이리라.



언제나 그렇지만 내가 사주지 못하는 창잉의 쇼핑은 더더욱 미안하다. 절약해야한다는 엄격성을 내세우며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지만, 알바 학생 아저씨가 준 쿠폰으로 가방을 사게 하고 이외에는 아무것도 사주지 못한 한심한 남자친구의 역할은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가방이 너무 이쁘다며 좋아하는 그녀에게 미안함만 가득하다. 그런 그녀가, 같이 있어 해준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를 떠나 갑자기 중국으로 가버렸다. 두 달 전의 약속은 어디간 줄 모르고 갑자기 떠나버렸다. 허전하다.

by Anselmus | 2011/01/15 17:24 | Diary.. | 트랙백 | 덧글(0)

I don't care

아침에 일어나 TV를 켜본다.
2NE1인가. 이제 20대가 되었을까 말까해 보이는 어린 아이들이
뮤직비디오인가 하는 것 속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무척이나 화려한 화장을 하고, 옷차림을 하고서는 음악을 들려준다.

I don't care, I don't care.

수많은 음악이 들리는데, 나의 귀가 선택적으로 지각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귀속으로 들어온 수많은 음악들을 뇌가 선택적으로 나의 인지로 보내는 것인지
그것은 분명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나에게 들리는 것은 난 신경쓰지 않는다는 그 말 뿐이다.

I don't care, e, e, e, e, e...



생각할 것이 많은 요즘이다. 머리속이 복잡하다.
늙어버린 것인지, 그다지 행동성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상하게 가슴이 아프고, 요즘들어 감정을 울리는 음악들이, 멜로디가 끌릴 뿐이다.

문학은 내용과 형식과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놈의 노래가 내용과 형식과 표현이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 표현과 내용의 일부분에만 집중하며
나의 컨텍스트로 그들을 끌어들인다.

I don't care.

신경쓰지 말자, 나에겐 나아가야할 길이 있을 뿐이다.

by Anselmus | 2009/08/25 16:35 | Diary..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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