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6일
나는 무엇인가.
요즘 내가 즐겨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TV방송으로는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인터넷 라디오 방송으로는 "나는 꼼수다"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어찌보면 양 극단에 있는 프로그램으로 볼 수도 있고, 같은 맥락에 있는 프로그램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즐겨보고 있는 나는 또한 양 극단의 맥락을 즐기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것을 이어주는 같은 맥락의 삶을 즐기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학자로서의 삶을 지향하는 나의 모습은 "나는 가수다"의 어떠한 측면을 지향하고 있을 것이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서, 물론 대중들의 비판과 규정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이 그 하나이다. 교육학 전문가로서 일반 대중들이 "막말"하는 모습들을 보며 분노하고 때로는 엘리트주의에 빠지는 나의 모습들은 그러한 내 모습의 한 단면이다. 이러한 전문가로서의 능력을 통해 올바르지 못한 세상에대해 분노하고, 대중들을 설득하여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른 하나이다.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며, 아버지와 토론을하며 싸우기만 하는 나의 모습이 여기에 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전자도, 후자도 나의 능력과 노력의 바운더리에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한때는 평생을 타인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며 성직자를 지향했었다. 인생의 기준은 봉사이며, 타인에게 배푸는 삶이 나의 미래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성직자라는 특수한 삶의 형식이 나에게서 자신감을 빼앗아 갔다. 소위 '소명'이 없다는 것. 성직자는 말 그대로 신이 정해주는 것이며, 내가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무속신앙적 신념이 나를 합리화해준다. 그러고 난 후 나의 지향은 '교사'라는 또다른 성직으로 흘러갔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 꽤나 큰 편인 나(나 스스로의 생각일 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무한한 사랑에도 부족해하는 나이기에, 타인에 대해 봉사하는 삶이라는 맥락과 어울려 교사라는 성직이 나의 천직인 줄 알았다. 남을 가르치려드는 이기적인 본성까지도 나에게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 성직 마져도 쉽게 해낼 수 없다는 나의 마음이 나를 다른 곳으로 회피시켰다. 그렇게 대학원이라는 곳으로 왔고, 아직 그 도상에 앉아 있다.
내가 지향하는 삶은 무엇인가. 나는 가수다의 전문가적 기질인지, 나는 꼼수다의 사회 변혁적 기질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둘 다를 지향하면서도 어느 곳에도 진득하니 삶을 이끌어가는 삶을 살지 못하는 나는 안타까워한다. 비판적 지식으로서의 삶도 도구적 이성이 어느정도의 수준에 올라왔을 때 내가 이루어낼 수 있는 모습이다. 나는 꼼수다에서 들은 것이지만, 자신의 많은 재산을 시민운동을 하면서 다 까먹었다고 하는 박원순 대표의 모습을 내가 따라갈 수 있을까. 홍준표 대표가 비꼬았듯이 마누라에게 얹혀서 살아가는, 남편 구실을 못하는 삶을 통해서 나의 삶을 이끌어갈 수 있을까. 나도 그렇고 상영이도 그럴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중학생, 고등학생 때에 끝냈어야 할 고민들을 이제 3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 자리에서 이렇게 하고 있는 나를 보면, 한심하기도 하고 죄스럽기도 하다. 이러라고 부모님께서 나아주지는 않으셨을텐데....하는 자책도 해본다. 현상학이라는 학문을 하면서도, 나는 가수다의 사람들과 같은 삶 많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 그러면서도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 피디와 같은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나의 모습. 그들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그러한 추진력과 치열함이 부럽고 나를 부끄럽게 한다.
다시 결론은 치열함이다. 치열함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도 석사논문 따위를 완성하지 못하며 어물적어물적 마누라와 교수님, 나와 부모님 모두를 괴롭히고 있는 나의 모습은 치열함을 상실한 나의 모습이기 때문에 스스로 반성하고 힘을 내어야 한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나의 삶에 치열함을 상실한 순간 현상학에도, 사회철학에도, 사회에도, 가족에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사라진 것 같다. 나를 치열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하나의 준비들을 다시 이끌어가고 있는 요즘이다. 몸이 많이 약해졌지만, 이 또한 관리하는 것이 나의 철저한 치열함 속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일 것이다. 결론은 또다시 뻔한 이야기고, 하나마나한 이야기이다.
주말에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나와의 행복한 삶과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는 삶을 살기 바라는 우리 마누라는 박원순 변호사와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가족에 대한 사랑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나는, 사실 나 혼자만의 삶을 추구해야하는 사람이 그러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개인에 대한 사랑이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나를 치열하게 만들고 싶은 나는 바보같고, 현대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사람일까.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디로 가야하는가. 길은 보이는데, 그 길이 바른 길인지 알기가 어렵다.
# by | 2011/10/16 14:07 | Diary..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