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20일
감정의 본질과 분류
언제나처럼 북적거리는 아침의 지하철을 탔다. 7호선을 타고 가다가 이수역에서 내려, 4호선을 갈아타기 위해 환승로를 지나갔다. 앞에 뒷모습이 참 예쁜 여자가 있다. 몸매도 아주 균형 잡혔고, 긴 생머리가 매력적이다. 미니스커트가 늘씬한 다리를 돋보이게 한다. 얼굴은 보지 못했다. 감정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며 그녀를 따라간다. 어차피 지나가야할 길이기에 예쁜 여자를 보며 따라간다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그녀는 시각적 자극을 통해 나에게 인지적 정보를 주었다. 난 그것을 평가하며, 반응하였다. 반응은 행동적이었고, 느낌이었다. 행동이 먼저였는지, 느낌이 먼저였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아마 James의 말대로라면, 난 그녀를 보고 행동함으로써 '호기심'과 '성적 매력'이라는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Cannon-Bard이론에 따라 이들은 모두 독립적으로, 하지만 동시에 일어났을 것이다.

아침 운동을 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서 난 부교감신경계가 교감신경계를 압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운동이 끝난 후 뜨거운 물에 몸의 긴장을 풀었고, 지하철에서 한동안 가만히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새벽같이 활성화되었던 교감신경계는 그 순간 힘을 잃고, 성적 흥분을 향상시켰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자극했고, 나의 몸은 반응했으며, 나의 정서는 변했다.
환승로를 걸어가며 나의 정서를 측정해본다. 정서에 대해 책을 몇장 읽었더니 '자기보고'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7점 척도를 통해 나의 불안감, 기대감, 호기심 등을 측정해 본다. 불안감은 4, 기대감과 호기심은 7이다. 뒷모습이 예쁜 여자를 보며 기대감과 호기심이 높은 것은 당연한 것이며, 불안감은 실망을 안겨주었던 수많은 과거의 경험에서 도출된 것이다. 하지만 그 불안감은 '혹시나'하는 마음이었을 뿐, 지배적인 것은 기대감과 호기심이었다. fMRI를 활용하여 뇌를 측정할 수 없는 순간이다. 가격이 비싸고, 실 상황에서 활용이 불가능하다는 그 단점이 아쉽다. 나의 정서를 측정할 수 있는 휴대용 fMRI를 가지고 있다면 보다 정확하게 나의 뇌를 스캔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편도핵을 관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의 얼굴을 관찰할 수 없는 만큼 지나가는 사람들의 관찰해 본다. 한국 사람들은 길을 걸어갈 때 매우 무표정한 얼굴로 다닌다고 하지만, 그들의 얼굴 속에는 분명 다양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상황적 맥락에 비추어볼 때 이들의 표정들은 그들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임에 분명하다. 과학적이진 않지만, 즉흥적 관찰로 그 표정들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볼 수 있다. 피식 웃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사람도 있고, 책이나 PMP속의 내용이 재미있는지 웃으며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전화를 받으며 화를 내기도 하고, 까르르 웃기도 한다. 그들은 인지를 통해 평가하고, 행동하며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표현은 물론 가족에 따라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문화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 나는 좀 더 거대한 동일 공동체 속에 속해있으므로,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 것이라 가정한다. 그리고 그 가정에 따라 그들의 표정들을 보며 그들의 감정을 분류해 본다. 물론 상황 자체의 제한점을 통해 찾아 볼 수 없는 감정도 많이 있다. 특히, 혐오나 공포의 감정은 확인이 안된다. 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해 느껴지는 것은, 정말 행복이나 놀람 슬픔, 그리고 분노는 너무나 기본이 되는 감정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생각에 도달할 즈음 "개인의 지엽적인 경험을 통해 이론을 도출해 낼 수 없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차례로 나타난다. 다윈도 그러한 지엽성을 극복하기 위해, 사진기술도 발달하지 않은 그 시대에 얼마나 큰 노력을 했던가? 내가 본 것은 단지 나만의 작은 경험일 뿐이다.
4호선을 타는 승강장으로 뒷모습이 예쁜 여자를 좇아가던 나는 수많은 생각을 하며, 호기심과 성적 흥분이라고 하는 감정을 잃어버렸다. 감정 자체의 속성상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듯이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승강장에 도착한 그 순간, 그 추동 자체도 상실 되었다. 그녀의 앞모습은 조금 전 내가 지녔던 약간의 불안감을 현실화시켰고, 그녀의 동선과 나의 동선의 분리를 강요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기본 느낌일까, 아니면 여러 요소들의 혼합일까?"를 고민하며 새로운 동선을 확보해 나갔다. 여기에 하나의 요소를 추가하고 촉매를 통해 활성화시킨다면, '행복'으로 화학 반응할 것이다. 마치 H2O처럼…….
# by | 2009/03/20 20:50 | Diary..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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