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표 만병통치약

   비가 미친듯이 온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바케스로 물을 들이 붙듯이 비가 내린다. 비가 미친듯이 오신다. 날씨가 미쳤나보다. 하느님이 미친 것일까? 무엇이 미쳤든 엄청나게 비가 내린다. 모든 것을 멈추게하고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아침부터 소년은 빨강과 쏟아지는 비처럼 싸웠다. 왼쪽 문을 열고 빨강을 만난 이후로 하루하루 바람 잘 날이 없다. 툭하면 싸우고, 툭하면 사고가 난다. 싸우기 위해 만나는 것처럼 둘은 싸우고 또 웃고 안아주었다. 싸움은 그들의 애정을 확인하는 또다른 모습이었다. 끝없이 서로에게 상쳐를 주고, 그 상쳐를 보듬어 주며 가까워져 갔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진 그 상쳐가 너무나 아플 정도는 아니었다. 아파서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너무나 아프면 예전의 누군가가 그랬던 것처럼 닥터 캐멀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닥터 캐멀은 또다시 럭키치약을 생채기에 발라 주겠지? 나쁜녀석, 상처에 치약을 발라주는 놈이 어디있나. 그래도 소년에게는 다행이었다. 상처를 주지만, 그 상처를 보듬어주는 빨강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빨강이 엄지손가락 하나보다 조금 큰, 조그마한 병에 담긴 신비스러운 물약을 소년에게 주었다. 만병통치약. 아픔을 낫게 해주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했다. 
 
 
"이건 내가 있던 곳에서는 아플 때 쓰던 약이야. 머리가 아프면 머리에 바르고, 다리가 아프면 다리에 바르면 돼. 배가 아프면 먹으면 되고, 만약 냄새가 독해 먹기 힘들면 배꼽에 발라도 어느정도 효과가 있어."


  그 후로 소년은 머리가 아플때면 이마에, 목이 아플 때면, 뒷목에, 눈이 아플 대면 관자놀이에 그 물약을 조금씩 조금씩 발라주었다. 무언가 시원한 느낌이 감싸들고, 머리를 맑게 해주는 것 같았다. 통증을 완화시켜주고 힘을 주는 것 같았다. 소녀가 준 생채기를 소녀의 입김과 함께, 그 작은 만병통치약으로 이겨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마음이 아팠다. 소년은 어쩔 줄 몰라 작은 병을 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는 소년의 마음을 더욱 자극했다. 소년은 자신의 골방에 들어 앉아 머리를 쥐어짜면서 생각했다. 빨강이 잠시만 시간을 달라며 더나버린 후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자꾸만 덧나고 있었다. 무언가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 소년은 간단하게 짐을 싸고 방문을 열고 나갔다. 어짜피 빨강은 한동안 올 수 없었다. 스스로 상처를 아물게할 방법을 찾아 떠나야만 했다. 혹시몰라 빨강이 주고간 만병통치약을 호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섰다. 아프고, 아팠다.


by Anselmus | 2009/07/09 15:10 | Narrative...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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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상영 at 2009/07/14 21:34
내가 한국에 가서 오빠의 아픔을 다 치료해줄게...ㅋㅋㅋ 상영이라는약이 빨강표약보다 훨씬 좋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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